한국 천주교의 시작과 4대 박해
▶ 한국 천주교의 시작
1779년 권철신과 권일신, 이벽 등 몇몇 학자들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천진암에서 여러 가지 학문과 신앙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때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에 대해 공부하던 이들은 하느님이 누구이시고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깨닫게 되었고, 천주학을 진리로 받아들여 신앙을 품게 되었다.
그 후 이승훈이 우리나라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이승훈과 이벽은 스스로 성직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 교우는 거의 1,000명까지 늘게 되었다. 하지만 교리를 깊이 연구하던 이들은 스스로 성직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중국 천주교회에 사제들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1795년 중국에서 주문모 신부님이 한국에 오시게 되었다.
▶ 한국 천주교의 4대 박해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조선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사람들의 신앙을 억누르려 했다. 1784년(1984년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부터 1886년까지 9번의 박해가 있었고, 박해로 인해 1만 명 이상이 순교했다. 이 9번의 박해 중 가장 크게 일어났던 4대 박해에 대해 알아보자.
1. 신유박해(1801년)
순조 임금의 할머니인 정순왕후가 정치적인 이유로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했다. 이때 오가작통법이라는 법이 생겨났는데 다섯 집을 한 조로 묶어 서로서로 천주교 신자인지 아닌지 감시하는 법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첫 사제인 주문모 신부님과 많은 천주교 지도자들이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황사영이라는 신자는 중국에 박해로 힘들어하는 조선 천주교의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썼다가 발각되어 순교했다. 이후 조선에 33년 동안 신부님이 오실 수 없었다.
2. 기해박해(1838년)
당시 조선에는 큰 권력을 누리는 두 가문이 있었고, 그중 한 가문에 천주교 신자가 많았다. 그런데 두 가문이 정치적으로 싸우면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됐다. 조선에 들어와 있던 앵베르 주교님, 샤스탕 신부님, 모방 신부님,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유진길의 둘째 아들인 13살 유대철 베드로가 기해박해 때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님의 부모님도 이때 돌아가셨다. 현재 기해박해 순교자 중 79명의 순교자가 시성 되었다.
3. 병오박해(1846년)
병오박해는 김대건 신부님이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현석문 가를로, 남경문 베드로 등 20여 명이 순교했다. 당시 조선에 와 계셨던 페레올 주교님(김대건 신부님께 사제품을 주셨으며, 조선교구 3대 교구장임)은 다행히 들키지 않고 숨어 다니며 전교하였다. 그래서 병오박해가 끝난 뒤 조선의 천주교 신자는 2만 3천 명까지 늘었다.
4. 병인박해(1866년)
병인박해는 조선의 어려운 상황과 관련이 컸다. 힘 있는 외국 군대가 몰려와서 조선을 넘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은 러시아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선교사로 조선에 와 있었던 베르뇌 주교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조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신자들을 돌보던 베르뇌 주교님이 뒤늦게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러시아가 물러간 뒤였다. 흥선대원군은 외국의 세력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결국 또다시 박해가 시작되었다. 병인박해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는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박해였다. 10년 넘는 동안 1만 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목숨을 잃는 순교는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신앙을 증거 하는 순교자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실천합시다. 일상에서의 아주 작은 일, 즉 남 험담 안 하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 끊어내기 등 작지만 실천 가능한 것으로 자신을 죽이는 순교의 삶을 살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시다. 그리고 그 실천했던 순교의 삶을 미사 시간에 온전히 봉헌합시다. 동의하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O O O을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때에 ( )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 )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 )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 )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 ) 여기면
( )도 자기의 ( )과 아버지와 거룩한 ( )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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